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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중 한 장면

<헤어질 결심>에 대해서는 수많은 담론이 쏟아져 나왔고,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뭐 더 보탤 게 있을까 싶어서 소소하지만 재밌을 거 같은 거 몇 가지 준비했어요.

 

헤어질 결심 중 한 장면
<헤어질 결심> 중 가위를 손에 든 박정민
올드보이 중 한 장면
<올드보이> 중 가위를 손에 든 최민식

 

왜 박정민(홍산오 역)이었을까?

홍산오 역의 박정민 캐스팅에 대해서는 여러 말들이 있었다.
배역에 비해서 스타 급 배우를 캐스팅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홍산오 역에는 어느 정도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를 통해 주인공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홍산오는 사랑하는 여자에 집착하면서 자살 충동이 있는 걸로 그려진다.
사랑하는 여자에 집작하는 건 해준의 성격이고
자살 충동이 있는 건 서래의 캐릭터이다.
감독은 두 주인공의 운명을 동시에 홍산오를 통해서 암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홍산오가 옥상 위에서 가위를 목에 대면서 눈빛을 작렬시킬 땐
한편으로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가 보이기도 했다.

박정민이 차세대 최민식이 되는 건 아닐까?

 

왜 김신영이었을까?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김신영(연수 역)이 연기의 달인이기에 평소 눈여겨보고 팬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 외에 특별히 김신영을 캐스팅한 이유는 밝히지 않은 셈.
박찬욱 감독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고 몇 가지 이유를 추론해 볼 수 밖에 없다.
우선 그의 캐스팅이 의외라는 점.
박찬욱 감독은 '의외'를 무척 좋아한다. 그의 영화를 보면 하나라도 평범한 것이 없다.
한 장면 한 장면이 평범을 거부하는 독특한 '의외성'으로 꽉 차 있다.
정서경 작가는 박찬욱 감독에게 여러 안을 제시하면 반드시 그 중에서 가장 '이상한 것'을 선택하곤 했다는 인터뷰를 했었다. 말하자면 박감독은 이상하거나 의외여야지 좋아한다는 것.
김신영의 캐스팅은 단지 의외였기 때문일까?
한 가지 더 추론해 볼 수 있는 건 박찬욱 영화의 관객 수이다.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박감독은 천만 관객을 노린다는 인터뷰를 종종했다.
뜻밖에 그의 영화는 천만 영화가 단 하나도 없다.
투톱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은  천만 영화가 무려 두 개나 있고(괴물, 기생충)
900만 영화(설국열차)도 하나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의외로 박감독의 성적은 상대적으로 초라한 편.
<공동경비구역 JSA>가 580만으로 최고 수준이다.
박찬욱 감독이 천만 관객을 진심으로 노린 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은 그의 전작들에 비해 하드코어적 요소가 덜하고
여전히 잔인하지만 많이 순화된 모습을 보인다.
박찬욱 감독이 칸에서 가장 받고 싶어 했던 상이 감독상이 아니라 남녀 주연상이었단 걸 상기하면,
<헤어질 결심>에서 관객에 더 다가가고자 했던 마음이
친근하면서 박감독의 시리어스하고 변태스러운 면을 희석시켜 주고
좀 더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희극인 김신영을 캐스팅하게 한 건 아닐까.

 

박찬욱감독과 정서경 작가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과 감독 박찬욱

정서경 작가와의 관계

박찬욱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과 콤비플레이로 유명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무게 뒤에는 늘 정서경 작가의 날렵한 글발이 숨어 있었다.
사실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작가의 위상은 매우 낮다고 한다.
과거에는  이름을 날리는 시나리오 작가도 몇몇 있었지만 지금은 정서경 작가 정도가 겨우 남아 있는 정도.
정서경 작가는 이제 작가로 이름을 알리면서 독립적으로 드라마도 집필하고 예능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이례적으로 시나리오 작가로서 셀럽에 등극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 작가가 박찬욱 감독과 협업하기 시작한 게 <친절한 금자씨> 때부터라는데, 어쩐지 그때부터 영화 타이틀이 소설 제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정서경 작가의 입김이 많이 느껴진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을 때 "이제 내 인생에는 내리막 길만 남았다."라는 인터뷰를 했었다.
박 감독은 <올드보이>로 모든 걸 소진하고 그 이후로는 정서경 작가로부터 기를 보충받고 있는 건 아닌지.
정서경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헤어질 결심>은 '내 영화'라는, 감독의 보조 역할이 아닌 '나의 작품'이라는 자부심이 깊게 느껴진다.
 

영화 OST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배경음악으로도 성가가 드높다.
<올드보이>의 우아하고 클래시컬한 OST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는 박찬욱이나 봉준호 같은 세계적인 감독도 배출하는 대중문화 강국이 됐지만
그 정도 수준의 영화 음악가는 아직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프란시스 레이, 니노 로타, 엔니오 모리코네, 한스 짐머 같은
주옥같은 영화 음악가들의 이름을 갑자기 불러 보고 싶네.
애초 박감독은 정훈희의 노래 '안개'를 듣고 영화 <헤어질 결심>을 구상했다고 한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헤어질 결심>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정훈희와 송창식의 듀엣 음악이 흘러나오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심연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송창식의 그 탄식과 '앓는 소리'가 듣는 이를 비탄에 빠뜨린다.
아무래도 <헤어질 결심>은 남겨진 해준의 둘 곳 없는 마음이 밀물처럼 관객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정훈희 보다는 송창식의 목소리가 더 와닿는지 모르겠다.
그의 목소리는 노래라기보다는 하나의 끝모를 장탄식 같다.

정훈희, 송창식 안개  ▶들어보기

 

 
헤어질 결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진심을 숨기는 용의자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그들의 <헤어질 결심>
평점
7.8 (2022.06.29 개봉)
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고경표, 김신영, 정영숙, 유승목, 서현우, 정이서, 이학주, 박용우, 박정민, 유태오, 정소리, 황재원, 신안진, 김도연, 고민시, 차서원, 주인영, 손관호, 정혁, 윤성원, 최선자, 진용욱, 안진상, 정하담, 최대훈, 김미화, 곽은진, 안성봉, 김성곤, 문순주, 현직, 한서울, 김도담, 문정대, 유인혜, 권혁, 유덕보, 이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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