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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영화에 대한 안내라기보다는 이미 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기 위한 글에 가깝습니다.

영화<런>의 한 장면. 출처:구글

영화 속 이 가정의 한 단면을 살펴 보면 지극히 평범한 가정으로 보인다. 싱글맘인 다이앤은 딸 클로이를 홈스쿨링 시킬 정도로 지적으로 뛰어나다.

 

클로이는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학업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명문대학의 입학 허가도 받을 정도로 영리하고 지혜롭다.

 

다이앤은 말끝 마다 "사랑한다."를 입에 달고 산다. 병원 등을 전전하며 딸의 약을 구해오고 둘 사이에 나누는 대화도 지극히 평범한 모녀의 그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엄청난 폭력을 숨기고 있다. 그것은 곧 친절한 학대.

 

종래 학대는 때리거나 밥을 굶기는 등 신체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정서적인 것도 학대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을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조회수가 늘어난 단어인데, 심리학에서는  ‘그루밍’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가스라이팅은 연극 <가스등>에서 그 개념이 처음 나왔다고 한다.

 

'가스라이팅'의 한 장면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있자면 시청자는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얼핏 친절해 보이기까지 한 가해자와, 대개는 순진무구한 피해자의 관계는 그 내막을 샅샅이 뒤지지 않으면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스라이팅을 사랑과 혼동하기도 한다. "널 사랑해서 그랬어.", "널 위해 이러는 거야."는 가스라이터의 주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딸 클로이를 장애인으로 만든 것은 엄마 다이앤이었다. 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선천적인 장애인으로 알고 살지만 진실을 알고 나서는 영화 제목 그대로 ‘RUN(도주)’을 시도한다. 선량해 보이는 엄마는 소위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 3대장으로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스', 그리고 '나르시시트'를 꼽는다. 이 영화에서 엄마는 굳이 분류하자면 나르시시스트에 가깝다. 나르시시스트는 주변 인물을 자신의 편리를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얼핏 사이코패스와 비슷하지만 범죄 행위 직전에 머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사이코패스는 감옥에라도 보낼 수 있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범죄까지는 안 가기 때문에 덜 드러난다. 물론 이 영화에서 엄마는 감옥에 갈만한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현실 속 나르시시스트는 그 어두운 내면을 아름다운 가면으로 감추기 때문에 감지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다.

 

영화<런>의 한 장면. 출처:구글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 클로이는 그렇게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자란 아이 치고는 너무 대범하고 영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대의 마수에서 천신만고 끝에 벗어나지만, 현실 세계에서 학대받는 아이들 중 다수는 자신이 학대받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성장한다. 학대받는 아이들은 부모의 학대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굿 윌 헌팅>의 명대사 "네 잘못이 아니야."는 그래서 치유를 위해서 치명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https://url.kr/6wkhg1

 

자신이 학대 받고 있거나 학대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걸 깨닫는다면 이미 치유의 길에서 절반은 온 것이다. 

 

PS) '친절한 학대'를 검색해보니 반려견에 관한 것이 나온다. https://blog.naver.com/ekklimm/222424779830

한줄요약: 영국에서 반려견이 원할 때마다 사료를 주는 바람에 지나치게 비만해진 개의 견주에게 동물 학대죄를 적용하여 소유권을 박탈했다고. 

 

PS2) 한편 이 영화에는 영화 <트루먼 쇼>와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클로이가 막장이 된 엄마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엄마 다이앤이 "넌 내가 필요해."라는 대사를 날린다. 이때 클로이는 "난 당신이 필요 없어" 면서 일격을 가한다.

<트루먼 쇼>에서는 트루먼이 방송 스튜디오 '시헤븐'을 떠나려는 순간, 제작자 크리스토프가 "넌 여길 못 떠나."라면서 염장을 지른다. 물론 트루먼은 잽싸게 그곳을 빠져나가지. (두 영화 다 양육자와 피양육자 사이의 갈등과 파괴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내가 주고 있는 사랑, 받고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 알고 싶다면 그 안에 존중이 있느니 체크해보라.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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