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 섬에는 묘하게도 ‘슬픔’이란 단어가 없다고 한다. 그와 연관된 비애, 비탄, 통탄 등의 단어도 덩달아 없을 것이다. 덕분에 타히티는 그 아름다운 경관에 걸맞지 않게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언어가 소통의 도구일 때 슬픔 감정을 소통 못하고 꽉 막아두면 감정 상태에 이상이 와서 견딜 수 없게 되는 모양이다.
세상이 나고 언어가 났겠지만 거꾸로 언어가 세상을 창조하기도 한다. 그런 연구나 학문은 쎄고 쎘다. 예컨대 우리는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보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무수한 파장이 존재한다. 형형색색을 단 일곱 빛깔로 축약해 놓은 덕에 우리는 실제로 일곱 색깔 밖에 보지 못하게 된다. 한 때 우리는 초록색을 파란색으로 불렀고 지금도 많이들 그렇게 부른다. 신호등 불빛을 파란 불로 부르는 구세대들은 무의식 중에 초록색을 파란색으로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바다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신호등도 푸르다.
감정도 이와 같다. 감정에 관한 최신 이론은 감정이 의외로 생물학적 요인 못지 않게 사회 문화적 요인에도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타히티 섬에 ‘슬픔’이란 말이 없는 것처럼 우트카 에스키모인들에게는 놀랍게도 ‘분노’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대체 어떻게 분통을 터뜨리는 것일까?
감정에 관해 많은 단어를 알수록 그 감정에 대한 정화가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예컨대 화가 났을 때 '화', '분노', '격노', '짜증', '성질', '속상함' 등을 분류하고 그 화의 정도에 따라 호명할 수 있다면 그 감정에 좌우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 조절에는 의외로 잠, 식단, 운동 등의 요법 외에 단어 학습도 중요한 도구가 된다고 한다. 즉 감정을 언어로써 해체하는 것이다.
타히티 섬은 아마도 ‘슬픔’이란 단어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지상낙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명화가 되면서 한순간에 무너진 거겠지. 중남미 문명이 에스파냐 함대에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진 까닭이 그들이 지니고 온 전염병이었던 것 처럼. 중남미인들에게는 전염병 항체가 없었고 타히티 섬에는 ‘슬픔’이란 항체가 없었다. 순백지대가 오히려 무너지기 쉬운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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